극한에 가까운 실사 그래픽 추구하는 장인들 … 에이펀인터랙티브 권도균 대표를 만나다
극한에 가까운 실사 그래픽 추구하는 장인들 … 에이펀인터랙티브 권도균 대표를 만나다
  • 안일범 기자
  • 승인 2018.11.30 01: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는 속된 말로 '닦는다'는 용어와 '판다'는 용어가 있다. 특정 부위를 붙잡고 계속 문지르고, 집어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비 전문가가 보기에는 '대체 왜 저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길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작업이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그 길고 고된 '닦기'작업이 끝나면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10년지기 친구인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이 작업을 그림판으로 설명했다.
 
"페인트를 찍어서 덮으면 1초면 끝날 작업이지. 맞아. 대충 그라데이션 넣고 필터 살짝 그은다음에 내면 길어야 몇분이면 완성이지. 그렇게 만들어서 내도 잘 몰라. 그런데 아는 사람들이 있잖아. 나도 알잖아. 그래서 닦는 거야. 좋은거 원해? 그러면 시간을 줘."
 
소시적 게임을 개발해보겠다고 난리치던 시절. 그 친절한 친구 덕분에 알게 됐다. 한날은 캐릭터 볼따구와 입술을 붙잡고 하루종일 닦고 또 닦고, 또 한날은 머리카락을 한 뭉터기씩 붙잡고 닦던 그 친구는 결국 유명 디자이너가 됐다. 조금만 덜 싸웠으면 혹시(?) 하면서 가끔 이불킥을 하게 되는 부작용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는 경험을 얻었다.

굳이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 사람, 한 팀을 만나서다. 에이펀인터랙티브.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권도균 대표다. 에이펀인터랙티브는 VR분야에서는 이미 실력파 기업으로 입소문을 탄 기업이면서 동시에 무명(?)에 가깝다. 주로 잘나가는 기업들의 외주를 전담하면서 지금까지 성장했다. 흔한 투자 한번 받지 않고 20명까지 회사 식구를 늘렸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레퍼런스는 많이 없지만, 그들이 해 놓은 작업들은 이미 몇차례 전파를 탔고, 대형 컨퍼런스에서 박수 갈채를 받았으며,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이 기업의 손에서 탄생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권도균 대표는 딱 한마디로 대답했다. "좋아서요". 애써 다음 말을 기다려 보지만 그는 답이 없다. 강적이다. 사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고, 그 결과물에 환호해준다면 당연히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당장 필자에게도 '왜 기사를 쓰시나요"라고 묻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머릿속이 하얗다. 변화구를 던져본다.
 
에이펀이 내놓은 리얼타임 그래픽은 극한을 추구하는 실사 그래픽에 가깝다. 최신 차량을 추구하는 그래픽에서, 디지털 휴먼을 추구하는 분야에서도 실사를 방불케 한다. 소위 트리플A급 개발 스튜디오들이 내놓는 그래픽을 연상케 한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어떤 측면에서는 타협할 여지도 있다. 그래픽 퀄리티를 조금 떨어뜨리더라도 결과물을 많이 뽑으면 박리다매로서 기업을 운영하는데는 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저도 그렇지만 함께 작업하는 회사 동료분들이 모두 욕심이 있습니다. 극한의 퀄리티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심이죠. 모두 해외에서 오랜기간동안 근무해본 친구들이고 각 분야에서 작업할때 '끝'을 본 친구들입니다. 함께 모여서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작업물들, 도전해볼 수 있는 작업물들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도 그럴게 이 회사에는 괴수들이 산다. '겨울왕국',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내로라하는 콘텐츠들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이 한데 뭉쳐 있다. 작업실에서 화면을 쳐다보며 그들의 세계를 표현한다. 장인 냄새. 결코 날 이유가 없는 물감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문득 '예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예술하고 기술의 중간 단계라고 봐요. 예술을 하기 위해서 기술(테크)가 받쳐줘야 하는... 저희 회사가 하는 작업들은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픽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기술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돋움하는 분야를 주력으로 삼습니다. 저희가 주로 하는 분야가 엔진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동작하는 그래픽 기술인데, 이 부분에는 아직 도전하는 기업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연구해야하는 부분들도 많죠. 대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해서 작업물이 조금씩 인정을 받고, 회사로서도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이펀인터랙티브는 중급 사양에서도 문제 없이 구동되는 그래픽을 추구한다. 실사 그래픽도 지포스 960에서 문제 없이 동작할만한 스펙을 개발해 만들어 냈다. 모두 회사가 보유한 노하우 덕분이다. 드로우콜 콘트롤이나 폴리곤 제어, 텍스쳐 최적화 등에 노하우를 쌓아 일궈낸 성과다.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퀄리티를 뽑아 내니 그들을 찾는 기업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풍요속 빈곤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그는 욕망에 시달린다.
 
"나온 결과물들을 보면 대체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직 갈길이 더 먼것 같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을만한 퀄리티입니다. 그런데 정작 저희가 내세울 수 있는 프로젝트들은 없더라고요. 다른 기업들의 일을 돕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이제는 다른 기업일도 하면서 동시에 저희가 직접 결과물을 공개할 수 있는 작업들도 하려 합니다."
 
에이펀인터랙티브는 2019년을 대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회사 위층에 리얼타임 전문 버추얼 스튜디오도 개관을 앞두고 있다. 자사가 가장 잘하는 실사급 그래픽을 기반으로 버추얼 휴먼을 제작, 이를 스트리밍 방송에 연계하거나 이벤트 등에 활용하고 에이펀 고유의 리얼타임 파이프라인을 적용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이와 함께 유명 IP홀더들과 계약을 추진해 이를 활용하는 시스템도 내년 사업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내년 부터는 수면 위로 올라오는 프로젝트들이 많을 겁니다. 디지털 휴먼 프로젝트를 활용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터트려 나갈 예정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몇 천억이 오가는 구조는 아니지만 차근차근 큰 전쟁을 준비하는 기업으로서 발전해 나가고자 합니다."
 
권도균 대표와 공동 설립자 유한 이사는 소니 샌디에고가 롤모델이라고 한다.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 그것이 게임이 됐든 영화가 됐든 자사 콘텐츠들을 서포트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자 한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갈 계획이다.
 
"언젠가는 게임엔진으로서 3D그래픽의 한계를 뛰어 넘어 보고 싶습니다. 완전히 실사와 일치하는 수준까지 가면 '불쾌한 골짜기'가 존재하지만 한 번 넘어보고 싶습니다.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을 계속 영입하고, 프로그래머분들도 더 모시고 해서 원 없이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