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라이프:알릭스', 트리플A VR게임시대 서막
'하프라이프:알릭스', 트리플A VR게임시대 서막
  • 안일범 기자
  • 승인 2020.03.27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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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킬러 콘텐츠가 탄생한 것일까.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향한 극찬이 쏟아 진다. 스팀 평점란에 따르면 현재 평점 등록자 1만 2천명 중 98%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100점 만점에 93점 평점을 찍었다. 이 같은 수치는 한 해 최고의 게임에 준하는 점수로 유저들의 기억속에 오래 기억될만한 '명작'들이 주로 받는 점수에 해당한다. 

단순히 점수 뿐만 아니라 27일 현재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글로벌 게임 커뮤니티는 '하프라이프 알릭스'소식이 헤드라인급으로 장식돼 있다. 여기에 내로라하는 인플루언서들이 게임 영상을 촬영해 업데이트하면서 연일 화두에 오르는 분위기다. 소위 '트리플A'급 대작 포지셔닝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성공하게된 비결은 무엇일까.
 

0. 평범한 VR게임에 마법을 부리다

엄밀히 말하면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코어 메카닉은 기존 VR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상현실 세상을 걸어다니면서 이동하며, 총을 쏴서 상대를 죽인다. 물리 엔진을 동원해 주변 사물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이를 활용해 퍼즐을 풀어 나가는 구도다. 이 같은 VR게임들은 시중에 차고 넘쳐난다. 당장 각 플랫폼을 열고 VR FPS게임을 검색하면 십중팔구는 바로 이 방식으로 제작된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코어 메카닉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1. 살아 숨쉬는 오브젝트

처음 게임을 시작한 장소는 흔한 연구실이다. 화면에 TV박스 몇개가 놓여 있고 그 곳에서 메시지를 받는 역할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제작하지 않았다. 우선 화면이 나오는 스크린은 '브라운관'처럼 표현돼 있다. 다가가 들여다보면 때가 껴 있는데. 흔히 오래된 브라운관 TV에서 볼 수 있는 그 장면이다. 다가가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꺼진다. 현실 세계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다. 굳이 TV버튼을 눌러 볼 이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VR게임에서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VR게이머는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것을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한 양 집어 보고 던저 보고 흔들어 보고 만져 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냄새도 맡아보고 볼에 가져다 대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VR게임 개발사는 의무적으로 게이머들이 집었다 놓을만한 물건들을 만든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단 차이가 있다면, 디테일이다. 기존 VR게임에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오브젝트들이 '하프라이프 알릭스'에서는 살아 숨쉰다. 게임상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젝트에 심혈을 기울였다. 흔한 물병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반드시 만질 수 있도록 설정돼 있고, 각각 제품에는 상황에 걸맞는 디자인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브젝트들은 게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반한다. 그저 흔한 종이 상자가 때로는 유저 대신 희생양이 돼 주는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배경인줄로만 알았던 차는 훌륭한 엄폐물이 된다. 그냥 장식품인줄 알았던 양동이는 물건을 담아 들고다니면서 쓰기에 좋은 운반 도구이자, 급할때 적에게 씌워 가둬 두는 도구로서도 변신한다. 

개발사는 게임상에서 자연스럽게 유저들이 오브젝트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오브젝트를 집은 유저들은 곧 '이게 될까'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현실 세계에서 했던 행동처럼 가상현실 세계에서도 해법을 찾고자 하는 식이다. 

2. 몰입의 조건

이 같은 행동과 게임 플레이 방식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저들은 '가상현실'이지만 '현실 처럼'인식하게 되는 포인트가 된다.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하프라이프 알릭스'만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단계를 거치게 되는 셈이다. 이어 주변 환경을 둘러 보고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환경은 모두 현실 세계에서 볼법한 배경과 물품들이 잇달아 등장한다. 천장 조명을 통해 연출하는 분위기, 바닥에 고인 물, 굴러다니는 빛 바랜 신문, 놀이 기구 등 현실 세계에서 볼법한 배경들을 노출하면서 공간감을 살린다. 각 지역은 심혈을 기울여 갈고 닦은 흔적이 역력하다. 굳이 공들여 몸을 낮춰가며 봐야할 틈새까지도 디자인 영역에 포함돼 있다. 일례로 우산 손잡이가 눈앞에 보이는데 뽑을 수 없다거나, 게이머라면 한번쯤 당해봤을 법한 '벗길 수 없는 코트'와 같은 소위 '낚시성'디자인도 게임 내 장치로서 작동한다. 

개발진은 어느 정도 세계에 익숙해 질 때 쯤 이제 슬슬 '이질감'을 섞어 넣는다. 현실세계가 아닌 VR게임으로서의 허용을 녹여내면서 이제 세계관을 알아 가는 시도들을 하게 되는 셈. 그 양념으로 사용된 SF는 결정타가 될 만 하다. 현실세계에는 없는 것이기에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소위 '수비 범위(납득)'에 포함될 수 있도록 배치한다. 변화는 단계별로, 점진적으로 이뤄지면서 조금씩 섞어 나가는 기법을 채용한다. 참신함을 어필하고자 '서두르는' 과오도, 튜토리얼이랍시고 다 때려넣는 과오도 범하지 않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3. 괴물의 등장

게임 속에서 첫 괴물은 시체로 등장한다. 반드시 넘어가야할 길에 배가 갈라진 시체가 등장하는데, 유저들은 이 때 유심히 시체를 바라볼 수 있게 돼 있다. 별 것 아닌 장면이지만 이 구역을 넘어가게 되면 '적'이 나오며 '일반적이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서서히 긴장감은 고조된다. 열쇠를 부수면서 자동으로 손에 총을 들게 되고, 이제 슬슬 화면은 '어두 컴컴'한 지역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로 만나는 적은 멍청한 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면 유저를 말아올려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이어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적, 유저를 향해 돌격하는 적 등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난이도를 올려가며, 총을 들고 다나타는 적이 단계별로 출연하는 식이다. 특히 주목해봐야할 점은 바로 '개체 수'다. 일반적인 FPS게임은 동시다발적으로 수십명 적들이 주변에 산개해있고 미친듯이 뛰어다니면서 소위 '람보'가 되는 기법이 동원된다. 그런데 이 게임은 이야기가 다르다. 적 개체수는 많지 않으며, 하나씩 천천히 처리해 나가는 스타일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전혀 '루즈'하지 않다. 오히려 '긴장감'넘치는 상황 속에서 적들과 사투를 벌이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적들은 눈 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을 놀래킨다. 가까이 다가가기에도 찝찝해보이는 괴생명체들이 그르렁 거리고 있으면 일단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언제 뒤에서 적이 튀어나올지, 언제 위에서 뭐가 내려올지, 언제 아래에서 발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 긴장감이 게임플레이에서 결정적인 양념으로 자리잡는다. 여기에 귀를 간지럽히는 사운드는 화룡점정을 찍는다. 귓가를 긁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100kg가 넘는 거구에 운동이라면 숨쉬기만 하는 아저씨도 펄쩍 뛰고 바짝 엎드리게 매력이 있다. 

4.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전체 플레이타임 약 10시간에서 15시간이 걸린다. 이동 경로는 완벽하게 고정돼 있고, 고정된 동선안에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짜여져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동안 세계를 경험하고, 총격전을 즐기며, 가벼운 퍼즐을 풀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 게임 내 일부 요소들과 엔딩을 제외하면 '하프라이프'시리즈 팬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만한 요소들로 가득차있다. 지인 테스트결과 일반적인 VR게임은 즐기기 어려워 하는 유저들도 몇시간이고 HMD를 쓰고 게임을 플레이할 만큼 완성도도 높다. 이 게임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비로소 진지하게 접하게 됐다는 평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베테랑 제작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게임이다. 흔한 오브젝트 하나에도 애정이 듬뿍 담겨 있으며, 연출은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여기에 VR유저들을 세심하게 관찰한듯한 레벨지다인과 게임 플레이 설계가 돋보인다. 특히 중요한 부분은 바로 '상상력'. 장면과, 장면.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브릿지 사이에 배치된 '보여주기 요소'들은 기술의 영역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냄새'가 숨어 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이 그 토록 많은 사람들로 부터 극찬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5. 알릭스 그 이후

유저들에게 VR HMD를 착용하도록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이 돈을 주고 게임을 사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값비싼 기계를 구매하고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일이 먼저 수반돼야 한다. 그런데 '하프라이프'이름이 붙으면서 유저들은 사전에 값비싼 기계를 샀다. 게임도 샀다. HMD를 쓰고 게임을 즐겼다. VR계 점유율이 널뛸 정도로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이렇게 VR 세계에 유입된 유저들은 새로운 게임을 즐길 것이다. 그 비교대상은 항상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면 과제다.

현행 VR업계는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하프라이프 알릭스'급 타이틀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 대신 전체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더라도 가능한한 퀄리티를 끌어 올린 체험이 나와야 인기에 편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트리플A급 개발사들이 줄지어 VR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장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밸브는 3을 세지 못하지만 2는 세는 팀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라고 2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본편에서 성공에 힘입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호작용과 세계관, 그래픽등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팬들은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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