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체험
죽음 체험
  • 안일범
  • 승인 2015.09.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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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히피단 제작, 금천예술공장서 전시

오늘은 필자가 죽은 날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두렵고 가슴 아픈 일인줄 알았건만 의외로 담담했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고 있어서 였을까. 주변 사람들을 쳐다 보면서 눈빛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예정된 시간을 향해 달려 나간다. 허무한 순간이 끝나고 그저 멍하니 누워있기만 할 뿐이다. 꽤 괜찮은 죽음이라 생각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서정적인 사운드가 깔린다. 정신을 차리고 오큘러스 리프트를 벗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실 세계에서는 아직 살아 있었다.

가상현실은 유저들에게 독특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단이라고들 한다. 일반적으로는 쉽게 경험해볼 수 없는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있다고들 말한다. 최근에는 유저들의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주로 앉아서 하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룬다. 롤러코스터 위에서, 우주선 안에서, 달리는 차안이나 자전거 위에서 뭔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요즘 가상현실 시스템의 트랜드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국내 예술가집단인 디지털 히피단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다. 이들은 몸이 아파 간신히 고개만 움직일 수 있는 남자를 체험 대상으로 택했다. 병상에 누워서 고개만 간신히 돌리는 남자는 무엇을 상상하고 보고 있을까.


체험자는 병상처럼 꾸며진 체험실에 눕게 된다. 영상이 시작되면 자신을 간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기계들의 소리를 듣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짧은 시간 동안 주마등처럼 추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의사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건넨다. 그것도 잠시간 수술대에 오르다가 결국 이 남자는 서서히 죽어 간다. 간신히 무거운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펴 보니 가족들이 오열한다. 그리고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단 5분동안 진행되는 이 체험의 주제는 ‘죽음’이다. 디지털 히피단은 이 전시물을 ‘가상현실 세계에서의 죽음’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가상현실 속 관객은 영화를 단지 ‘보는’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존재’하게 되지만 곧 그 존재를 잃는 경험을 하게 된다”며 “가상현실에서 스토리텔링과 영화적 문법들을 실험하고 죽음에 대한 의미를 던지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은 오는 30일까지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예술공장 3층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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